기독교강요강해(158)_프린트물_2026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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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8-03 21:30본문
기독교강요강해(158)
[ 제3권 제25장 4항 – 제25장 5항 ]
성경본문: 빌립보서 3:21
기독교강요(존 칼빈, 생명의말씀사)
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어떤 유익이 우리에게 오며 어떤 효력이 따르는가?
제25장 최후의 부활
4항. 몸의 부활의 근거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다
부활을 증명하려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생각해야 한다고 우리는 이미 말했습니다. 바울은 간단하게 이 점을 가르칩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3:21). 여기서 우리 앞에 제시된 것은 헤아릴 수 없는 기적이며, 우리의 지각을 압도하는 위대한 기적입니다. 따라서 부활에 대해서 어떤 자연 현상을 상상하는 것은 가장 부적당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연계에서 증거를 빌려,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논박합니다.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고전15:36). 씨를 뿌리면, 썩은 것으로부터 곡식이 돋아나므로, 부활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세계 각지에서 볼 수 있는 기적에 올바르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 사실은 그다지 믿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이감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권능에 그 마땅한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아니면, 장차 올 부활을 참으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이 신념에 고무되어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사26:19). 다윗은 절망적인 처지에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사망에서 피함이 주 여호와께로 말미암거니와”라고 합니다(시68:20). 욥은 사람이라기보다 시체같이 되었으면서도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그날이 오면 자기가 완전한 사람으로서 일어날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즉, 그의 권능을 보이시려고)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욥19:25-27) 우리의 반대자들은 이 귀절을 부활에 적용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교묘하게 왜곡하지만, 그들은 논박하려는 점을 도리어 확인합니다. 거룩한 사람들은 곤란을 당할 때에 무엇보다도 부활의 비유에서 위안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에스겔에 있는 귀절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리라는 약속을 믿지 않고, 그들 앞에 길이 열리리라고 하는 것은 죽은 사람들이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것과 같다고 했을 때에, 에스겔은 한 환상을 보았는데, 그 환상 중에 들에 마른 뼈가 가득하고 그 뼈에 힘줄과 살이 붙으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다고 합니다(겔37:1-10). 예언자는 이 비유로 백성이 돌아갈 소망을 가지게 하였지만, 그 소망의 근거는 부활에 있었습니다. 이는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구원에 대해서도 부활이 그 모형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의 음성이 생명을 준다고 가르치신 후에, 유대인들이 그 음성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즉시 다음과 같이 첨가하셨습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요5:28-29).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을 본받아 전투 중에도 개가를 불러야 합니다. 우리에게 내세를 약속하신 분은 우리가 맡긴 것을 지켜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딤후1:12). 의의 면류관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되었고, 의로우신 심판장이 우리에게 그것을 주실 것이므로,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딤후4:8). 그래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은 우리에게 미리 내세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권능의 천사들과 함께 불꽃 가운데 나타나실 때에,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에게 고통으로 갚으시며, 부당한 핍박을 받는 우리에게 안식으로 갚아주시는 것은(살후1:6-8) 하나님의 본성에 합당한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이 곧 그 다음에 첨가하는 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셔서 그의 성도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며 모든 복음을 믿는 자로부터 기이히 여기심을 받으실 것입니다(살후1:10).
(각종 반대론자들의 반대론을 논박함, 5-9항)
5항. 이교도들의 반대론을 장례로 반박함. 천년왕국론자들의 오류
사람들은 부활을 항상 생각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일체 잊어버리게 하려는 신중한 계획이나 세운 것처럼, 죽으면 만사가 끝나고 인간은 소멸한다고 하였습니다.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고 한 솔로몬의 말은(전9:4) 당시의 일반적인 상식을 표현하였습니다. 다른 데서는,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라”고 합니다(전3:21). 모든 시대에 이 동물적인 어리석은 생각이 널리 퍼졌고, 교회내에까지 침입하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공언했고(막12:18,눅20:27,행23:8), 영혼은 죽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무지를 변명의 구실로 삼지 못하도록, 본성의 놀라운 충동에 의해 사람들은 그들의 눈앞에 항상 부활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장 풍습을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인정한 것은 그것이 새로운 생명에 대한 보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아무도 이런 풍습이 오류에서 생긴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조상들도 매장 의식은 엄수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같은 풍습이 이방인들 사이에도 존속하여, 그들 앞에 놓인 부활의 형상으로 그들이 깨우쳐지기를 원하셨습니다. 매장 의식은 유익하지 못했지만, 만일 우리가 그 목적을 현명하게 통찰한다면 우리에게는 유용한 것이 됩니다. 아무도 믿지 않은 것을 모든 사람이 함께 고백했다는 것은, 그 불신앙에 대한 중대한 반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시체와 함께 부활의 기억도 묻어버리도록 사탄은 그들의 감각을 마비시켰을 뿐 아니라, 부활론의 이 부분을 각종 거짓말로 혼란시켜 결국 부활론을 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바울 시대에 사탄이 그 작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겠습니다(고전15:12 이하 참조). 그러나 조금 후에 천년왕국론자들이 뒤를 이어, 그리스도의 통치기간을 천년 동안으로 제한하였습니다. 그들의 조작은 너무도 유치해서 논박할 필요나 가치가 없습니다. 그들의 오류에 구실을 준 것이 계시록임이 분명하나, 그 계시록도 그들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천이라는 수는(계20:4) 교회의 영원한 복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지상에서 수고하는 동안에 당할 각종 곤란에만 적용되는 것입니다. 도리어 성경 전체는 선택된 자들의 복이나 악한 자들의 벌이 영원하리라고 선언한다(마25:41,46).
그런데 이 모든 일은 우리의 시력으로 볼 수 없으며 지력으로도 이해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내세의 생명의 기업을 향유하는 기간을 천 년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얼마나 큰 비난을 던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그들이 그의 영광으로 변모하게 될 그리스도 자신도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고전15:13 이하). 만일 그들의 복이 유한하다면, 그들의 복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도의 나라도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게 됩니다. 요약하면,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에 관한 일을 전혀 모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권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려는 악의를 품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권능은 죄가 말소되고, 죽음이 삼켜지고, 영생이 완전히 회복되는 때에 비로소 실현됩니다.
이 사람들은 악한 자들이 영원한 벌을 받는다면, 하나님께 극심한 잔인성을 돌리게 될 것이 두렵다고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소경에게도 들여다보이는 어리석은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배신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스스로 잃은 자들에게서 하나님이 그 나라를 빼앗으시는 것은 참으로 불공평한 처사이며 그들의 죄는 일시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함으로 침해한 하나님의 위엄과 공의는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허물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벌이 죄의 정도를 넘는다고 그들은 말하지만 이런 모독적인 언사는 참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위엄을 공경할 줄 모르고 도리어 경멸하면서, 한 영혼이 멸망하는 것을 더 큰 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박한 자들이 떠드는 것에 우리가 논박할 가치를 인정하는 것같이 되어, 앞에서 한 말과 다르게 되겠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무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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