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S_Ruth_룻기 제3과
공부할 내용: 룻기 1장 19절 - 2장 1절
본문
2026년 7월 19일(주일) 오후 4시 줌zoom 그룹성경공부
1.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까지 갔습니다.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Is this Naomi?)”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 “이가 나오미냐‘라는 말은 나오미가 고통으로 인해 너무나 망가지고 바뀌어 있었으므로, 베들레헴 사람들은 예전에 알았던 그토록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명랑했던 사람과 동일한 사람이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세월의 흐름과 병으로 인해 사람들의 용모와 모양이 바뀌는 것을 볼 때, 우리들은 베들레헴의 사람들이 ”이가 나오미냐“라고 말한 것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둘이 같은 사람이라고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비유적으로 적용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은 이전 사람과는 전혀 다른 새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람이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었을 때의 그 위대한 변화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룻1:19, 겔36:26-27, 눅19:8, 요3:3, 행9:20-21, 고후5:17, 딛3:5)
답)매튜헨리주석-나오미와 룻은 피곤하고 지친 발걸음으로 (아마도 여행의 피로는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가르쳐준 선한 교훈들과 둘이 나눈 아름다운 대화로 인해 상당히 경감되었을 것으로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마침내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그들은 매우 적절한 때 즉 보리 추수 시작할 때 도착했는데, 이 때는 첫 추수의 때로서 뒤이어 밀을 추수할 때가 이르게 될 것이었다. 이제 나오미는 모압 땅에서 들었던 이야기 즉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여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며, 또한 룻은 이 아름다운 땅을 최고의 상태로 볼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겨울을 위해 양식을 준비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우리의 때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모든 일들이 그러하고, 또 그 일들이 일어나는 시간 또한 그러하다. 여기에서 다음을 주목하라. 1.이들의 옴으로 인해 이웃사람들이 소동함.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19절). 나오미의 옛 지인들은 그녀의 형편과 관련하여 이것저것 묻고 또 베들레헴에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해 환영을 표하기 위해 그녀 주위에 모여들었다. 어쩌면 그들은 나오미가 그야말로 맨손으로 돌아왔으므로 성읍의 짐이 되지 않을까 하여 떠들썩했는지도 모른다. 이로 볼 때 우리는 나오미가 예전에 상당한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다시 돌아온 것이 이렇게 큰 주의를 끌지는 않았을 것이다. 높은 지위를 갖고 부유하게 살던 사람이 가난이나 불명예 속으로 떨어지게 될 때, 그들의 몰락은 더욱 두드러지는 법이다. 그들은 놀라며 말한다: 이가 나오미냐? 이렇게 말한 사람들은 성읍의 여인들이었다. 왜냐하면 여기에 사용된 단어가 여성형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오미와 가까웠던 사람들은 그녀가 이러한 상태에 빠진 것을 보고 놀랐다. 그녀가 고통으로 인해 너무나 망가지고 바뀌어 있었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거의 믿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이 그들이 예전에 알았던 그토록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명랑했던 사람과 동일한 사람이라고 그들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이가 나오미냐? 장미가 만발했을 때와 시들었을 때의 모습은 너무도 다르다. 형통하던 시절의 모습과 비교할 때 지금의 나오미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하기 그지없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나오미의 불행을 비난하면서 경멸 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이 사람이 조금 어려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이방 나라를 떠돌아야만 했던 바로 그 사람인가? 그로 인해 얻은 것을 보라!”), 그는 참으로 야비하고 치졸하기 짝이 없는 자일 것이다. 넘어진 자를 보고 쾌재를 부르는 것보다 더 야만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정심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묻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 사람이 그토록 좋은 집에서 풍족하게 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던 바로 그 사람이냐? 어떻게 금이 이렇게 빛을 잃었단 말인가!” 첫 번째 성전의 장엄함을 보았던 자들이 두 번째 성전의 초라함을 보았을 때 울었던 것처럼, 여기에서도 그러했다. 고통이 잠깐 사이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사실을 주목하라. 세월의 흐름과 병으로 인해 사람들의 용모와 모양이 바뀌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베들레헴 사람들이 말한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이가 나오미냐? 둘이 같은 사람이라고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은혜 가운데 우리로 하여금 그와 같은 모든 변화들에 적합하게 하신다. 특별히 ’그 위대한 변화‘에!
2.나오미가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나를 나오미[뜻:즐거운, 상냥한]라 칭하지 말고 마라[뜻:쓴, 쓴 것]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 나오미는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의하여 자신이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인정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이 자신과 다투심으로 그러한 고통이 왔음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격렬하게 불평을 늘어놓는 대신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였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고통을 올바르게 감당하는 방법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또한 우리에게 임한 고통에 순응할 때, 그와 같은 고통은 우리에게 거룩한 고통이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함께 대화해 보십시오. (룻1:20-21, 욥1:21, 욥2:10, 시39:9, 롬8:28, 고후4:17, 히12:11, 벧전5:6)
답)매튜헨리주석-II.나오미의 영혼의 평온. 어떤 사람이 자신의 곤궁함을 비웃는다 할지라도, 나오미는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늘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 대해 마음이 격동되지 않을 것이었다. 도리어 경건한 인내심으로 자신의 고통으로 말미암는 모든 우울한 결과들을 기꺼이 짊어질 것이었다(20,21절):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나오미는 ‘즐거운’ 혹은 ‘상냥한’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의 모든 즐거운 것들은 다 사라졌다. 나를 ‘쓴’ 혹은 ‘쓴 것’을 의미하는 마라라 부르라. 지금 나는 슬픈 영혼을 가진 여자가 되었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나오미는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우리 역시도 우울한 처지에 빠졌을 때 이와 같이 해야 한다. 1.자신의 ‘처지의 변화’에 대해 나오미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주목하라. 그녀는 격렬하게 불평을 늘어놓는 대신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야기한다. (1)그것은 매우 슬프고 우울한 변화였다. 그녀는 풍족하게 나갔다. 나오미는 자신에게 남편과 두 아들이 있었을 때의 처지를 그와 같이 묘사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풍족함의 많은 부분은 행복한 가정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지금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채 비어 돌아왔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모든 물건들을 팔아버리고 단지 옷가지들만 둘러멘 채 고향에 돌아왔을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풍족함’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은 얼마나 불확실한가!(삼상2:5,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풍족함 속에 있을 때조차도 우리는 궁핍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결코 비어질 수 없는 풍족함이 있으니 그것은 영적이며 거룩한 풍족함이다. 이것은 '더 나은 것'으로서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2)나오미는 자신의 고통 속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나로 하여금 비어 돌아오게 하신 분은 여호와시다. 나를 괴롭게 하신 자는 전능자시다.” 고통 속에 빠져 있을 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손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우리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는 여호와시로다(삼상3:18,욥1:21). 특별히 우리를 괴롭게 하신 자가 샤다이 즉 전능자이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분과 더불어 다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는 것과 그분께 복종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유익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실 때 사용하신 이름이 바로 이 이름이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창 17:1). 그는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괴롭게 하시지만, 그의 '완전한 풍족함' 이 모든 고통 가운데 우리를 채워주신다. 우리를 비게 만드시는 분은 또한 어떻게 우리를 자신으로 채울 것인가를 아신다. (3)나오미는 고통이 자신에게 가져다준 느낌을 매우 감정적으로 표현한다: 그가 나를 심히 괴롭게(쓰게, bitterly) 하셨거늘. 고통의 잔은 쓴 잔이다. 설령 나중에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 할지라도, 지금 그것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슬픈 것이다(히12:11). 욥은 이렇게 불평한다: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나이다(욥13:26). (4)나오미는 하나님이 자신과 다투심으로 그 고통이 왔음을 인정한다: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우리를 고치고자 하실 때 하나님은 마치 우리를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우리를 징벌하시고 우리와 더불어 다투신다(욥 10:17). 모든 회초리에는 ‘증언의 목소리’(voice of witness)가 담겨 있다. 2.나오미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그와 같은 변화에 기꺼이 순응한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지니, 나 자신에게나 친구들에게나 내가 더 이상 즐거운 자가 아니기 때문이라. 대신에 지금의 처지에 좀 더 부합하는 이름인 마라라 부르라.”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비천 가운데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전에 즐겨 사용했던 헛된 경을 계속해서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나오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처럼 슬픈 처지에서 영광스러운 이름이 사용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겸손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만일 하나님이 자신을 ‘쓰게’ (bitterly) 다루셨다면, 그녀는 이러한 섭리에 순응하여 기꺼이 마라(bitter)라 불릴 것이다. 우리를 겸손케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는,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마음을 겸손케 해야만 한다. 우리의 처지가 낮아졌을 때에는, 우리의 영혼 또한 그와 함께 낮아져야만 한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임한 고통에 순응할 때, 그와 같은 고통은 우리에게 ‘거룩한 고통’이 된다.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고통을 올바르게 감당할 때 비로소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다. 고통을 감당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이제까지 겪은 수많은 고통들은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3.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에 부유하고도 유력한 자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보아스였습니다. 룻기에 보면, 나오미는 가난하고 하찮은 과부였지만 그러나 그녀는 부유한 친족을 자랑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짐이 되려고 하지 않았으며 또한 고통 가운데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면서 그들에게 특별한 기대도 갖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부유한 친족을 자랑하며 뽐내는 것은 큰 죄이며 또한 그들을 의지하는 것은 큰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룻1:22-2:1, 시146:3-5, 잠11:28, 렘9:23, 렘17:5, 고전3:21, 고후10:17)
답)매튜헨리주석-이제 나오미는 베들레헴에서 옛 친구들 가운데 정착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보게 된다. I.유력한 자로서 부유한 친족인 보아스(1절), 유력한 자(mighty man of wealth)를 갈대아 역본은 율법에서 강한 자(mighty in the law)라고 읽는다. 만일 그가 재물과 율법에서 공히 유력했다면, 이것은 매우 드물지만 그러나 정말로 훌륭한 결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이 진짜 유력한 사람이다. 보아스는 광야시절 유다 지파의 한 방백이었던 나손의 손자였으며, 여리고의 기생이었던 라합의 (아마도 둘째 아들인 살몬의 아들이었다. 그의 이름 속에는 힘이 들어있었다-보아스는 그 안에 힘이 있다는 뜻이다. 또한 그는 지금은 상당히 약화된 엘리멜렉 가정에 속해 있었다. 다음을 관찰하라. 1.부유하며 유력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아스에게는 가난한 친족들이 있었다. 모든 나뭇가지가 다 굵고 튼튼할 수는 없다. 세상에서 유력한 자라고 하여 미천한 친족들을 부끄럽게 여기며 경멸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교만하며 몰인정한 사람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2.가난하고 하찮은 과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미에게는 부유한 친족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자랑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에게 짐이 되려고 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고통 가운데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면서 그들에게 특별한 기대를 갖지도 않았다. 부유한 친족을 가진 자들은 서로 다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로운 섭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친족들을 자랑하며 뽐내는 것은 큰 죄이며, 그들을 의지하는 것은 큰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참고성경구절
겔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눅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행9:20-21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함이 아니냐 하더라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욥2:10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시39:9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후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히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벧전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시146:3-5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잠11:28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폐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렘9: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렘17: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고전3: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고후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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