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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 성경공부(033)_2024년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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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3-3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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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 존스 교리강좌 1

17_아담의 후손과 원죄_Adam’s Posterity and Original Sin(1/2)

 

 

1. 타락의 즉각적 결과(16장에서 계속)

 

지난 강의에서 우리는 사람의 타락이라고 하는 교리를 고찰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 세계의 모습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어져 에덴 동산, 곧 낙원에 놓였던 사람의 모습과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이러한 차이의 원인이 첫 번째 죄인 사람의 타락 때문이라고 말하는 창세기 3장의 설명을 고찰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아담과 하와의 경우에 죄로 인해 발생한 몇 가지 즉각적인 결과를 추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직 다루지 않은 몇 가지 즉각적인 결과들이 더 있습니다. 예를 들어 뱀에게 선포된 저주는 아직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 저주는 창세기 3 14~15절에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본문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죄와 사람의 타락이 가져온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결과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지나가야만 죄의 결과에 대한 고찰을 마무리지을 수 있습니다.

여자의 경우 몇 가지 결과들이 더 이어졌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이 것은 분명 대단히 중요한 진술이며,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 이것은 언제나 진리였으며 그 사실의 중대성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산은 원래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계획된 것이 아닙니다. 출산이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은 죄와 사람의 타락으로 인한 결과 중 하나입니다.

또 하나의 즉각적인 결과는 땅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17절과 18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그리고는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던 내용의 본문이 이어집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로 사람의 수고를 더하고 끊임없는 문젯거리를 제공했습니다. 땅은 끊임없이 광야의 상태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작을 멈추면 금방이라도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 모든 것이 타락의 결과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룹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8:20).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생물과 연관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내려진 저주는 피조물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오늘날 모습은 처음의 모습과도 다르고, 장차 악과 죄가 세상에서 제거될 때 변화하게 될 모습과도 다릅니다.

 

 

 

2. 타락이 아담의 후손들에게 끼친 영향-죄의 보편성

 

여기까지의 내용은 타락의 즉각적인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이 위대한 교리의 또다른 중요한 측면을 살펴보려 합니다. 이제 우리는 죄와 타락이 아담 자신에게가 아니라 그에게서 나온 모든 후손에게 끼친 영향을 고찰할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죄의 보편성'이라는 사실을 통해 이 주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마도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죄의 보편성에는 모든 사람이 동의합니다. 모두가 죄라는 말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 쓰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언제나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그가 그리스도인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얼마나 미개한 사람인지, 문명인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분명 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며, 비참함과 불행을 유발하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의 보편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렇게 불러야 합니다.

 

(1) 죄의 보편성에 대한 잘못된 설명들

우리는 죄의 보편성을 설명해야만 합니다. 이 사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세상과 사람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의 의무입니다. 앞에서 저는 나름대로의 설명을 하는 사람들을 잠시 언급했습니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진화론을 논거로 하여 사람이 완전하지 않은 이유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설명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오지에서 방금 나온 존재입니다. 아직까지 짐승과 같았던 과거의 유물들과 흔적들을 벗어 버리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단지 미성숙할 뿐입니다. (이 견해에 대한 고찰과 답변은 앞에서 이미 제시했습니다). 지식의 결여가 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좋은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이 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설명이 제시되고 있지만 일일이 언급하고 반박할 시간은 없습니다. 단지 이 모든 설명이 부적절하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설명들은 모순을 일으키며,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설명하기에는 모든 이론이 너무 피상적입니다.


(2) 죄의 보편성을 확증하는 성경구절들

 

죄의 보편성은 성경 전체에서 확증됩니다. 실례를 보여 드리기 위해 몇몇 잘 알려진 본문을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골라보겠습니다. 이사야서 53 6절에 나오는 위대한 진술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우리 모두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 모로 볼 때 이 교리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진술은 로마서 3장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 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0).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1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3). 유대인이나 이방인, 야만인이나 헬라인,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가 누구인가에 관계 없이 온 세상, 즉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구원에 대한 성경의 교리를 참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중대한 교리입니다. 야고보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3:2). 이 구절 역시 죄는 보편적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의 첫 번째 서신에서도 두 번 반복해 이 사실을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 10).

 

_죄는 사람의 모든 본성에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성경의 진술들을 종합해 보면 성경은 온 세상이 죄를 범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죄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성경은 죄가 사람의 모든 본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합니다. 즉 인간 존재의 모든 부분-몸과 혼과 영-이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3) 죄란 무엇인가 죄는 특별한 종류의 악이다

 

그렇다면 즉시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이 시점에서 우리가 말하는 죄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분명히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죄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성경이 죄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가르치고자 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보겠습니다. 먼저, 성경은 죄는 특별한 종류의 악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비록 악한 것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죄는 아닌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악은 재난 등과 같이 뭔가 일반적이고 물리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악의 발현이지만 반드시 죄가 발현한 것은 아닙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악을 죄라고 구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악이 일반적으로 죄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종류의 악이 죄입니다.

성경은 죄를 묘사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용어를 사용합니다. 성경에서 매우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과녁을 맞추지 못하다.' 혹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다.'라는 의미입니다. 또다른 단어는 고결하지 못함. 참되고 온전하지 못함, 정직하지 않음. 정해진 길에서 떠남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대한 구분입니다. 또 하나의 단어는 반란, 반역, 우리 자신을 적법한 권위에 종속시키기를 거부하는 것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율법을 적극적으로 범하고 언약을 의도적으로 어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는 언제나 이 모든 것 이상의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 번역되는 또 하나의 성경 단어는 "죄책"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또다른 용어는 신실하지 못함, 심지어 배신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신실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배신의 죄를 짓는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이와 같은 죄의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종종 사용된 또 하나의 단어는 "헛됨", 즉 공허하고 무익함입니다. 베드로는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헛된 행실"에 대해 말합니다(벧전 1:18).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는 문제에 대해 기록했습니다(17). 허망함은 죄에 대해 성경에서 매우 흔히 사용하는 개념입니다. 마지막으로 죄는 본성의 왜곡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인가 비틀리고 왜곡되는 것이 죄입니다. 지금까지 열거한 것들이 성경에서 도덕적, 윤리적 악의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단어들입니다.

 

_죄는 절대적이다

성경이 죄에 대해 두 번째로 가르쳐 주는 것은 죄가 절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선과 악을 완전한 대립의 관계로 제시합니다. 그 중간에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검든가 희든가 둘 중 하나이며, 회색은 절대 없습니다. 빛과 어두움, 선과 악, 하나님과 벨리알 사이에는 아무런 사귐도 없습니다. 죄의 특성은 절대적인 특성이며 죄는 실제로, 그리고 명백하게 나쁜 것입니다. 죄는 단순히 선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죄는 적극적인 것이며 명확하게 규정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두 극단 사이에 중간은 없다고 말한 것이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악으로부터 선으로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일은 없습니다. 선하거나 악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_죄는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규정된다

성경에서 세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죄는 언제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죄를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견지에서 규정합니다. 죄에 대한 성경적 개념이 성경에서 유래하지 않은 도덕적 개념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바로 이 점입니다. 죄는 언제나 하나님과 관련되었으며 죄를 죄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입니다. 죄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영예를 위해 살지 않는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_죄는 마음 깊은 곳에 있다

성경에서 네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죄는 사람들의 삶의 표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은 마음속에 있다는 점입니다.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 등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15:19).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마음은 단순히 나의 감정이 있는 곳, 내 삶의 표면에 있는 어떤 것, 또는 내 인격을 드러내는 방법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나의 인격의 한가운데이자 근원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죄가 바로 이러한 의미의 마음에 거한다고 말합니다.

 

_죄는 행동이 아니라 상태다

다섯 번째, 성경의 죄에 대한 또다른 진술은 죄는 행동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행동이라는 견지에서만 규정해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죄가 행동으로 표현되기 전에는 하나의 상태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죄는 층의 개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죄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토록 끊임없이 저지르고 있는 죄 된 습관들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음 단계로, 우리가 죄 된 습관을 지닌 피조물이라는 이유 때문에 죄의 행실이나 특정한 행동에 탐닉하게 됩니다. 그래서 죄를 특정한 행동의 견지에서만 생각하는 것은 피상적이며 매우 비성경적입니다.

 

_죄는 죄책과 오염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죄를 묘사하고 정의할 때 죄가 죄책(guilt)과 오염(pollution)이라는 사실을 항상 언급합니다. 다 시 말하건대, 오염은 상태, 상황이지만, 죄책은 죄의 일부이며 성경에 따르면 죄책 자체가 죄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발견한 죄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정의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즉 죄는 상태와 성향과 행동, 그 어느 것에서든지 하나님의 도덕법에 복종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내용을 요약해 줍니다. 이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중요해집니다. '왜 우리 모두는 죄를 범하는가?' '어떻게 해서 우리가 죄를 범하게 되었는가?' '죄의 보편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의견들에 대해 이미 다루었습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아담의 죄로 인한 것이며,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원죄의 직접적인 결과로 생겨난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일종의 중립적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즉각 다른 사람들의 나쁜 본보기를 보고는 그것을 따라함으로써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원죄에 대한 성경의 교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죄를 아담과 직접 연관시키지 않고, 아담이 나쁜 본을 남겨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따랐으며, 이런 모방 과정이 그 이래 계속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충실하기 원한다면 죄를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죄를 단지 무능함이나 장애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죄를 아담의 첫 번째 죄와 직접 연관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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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죄의 보편성을 설명 하는 이론

(5) 원죄의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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